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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 긴 글을 보내네”

출처:스카이림 캐릭터 슬롯 불러오기   작성자:패션   시간:2024-03-28 22:17:48

“짧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 긴 글을 보내네”

[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새해맞이 중간정리

마크 트웨인이 친구에게 쓴 편지
짧고 쉬운 문장엔 더 많은 노력이
내 글 자신 없을 때 장황함에 은폐
정확한 뜻 ‘전문용어’는 딱 한번만
2014년 10월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열린 특별전시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설이 있어서 매년 새해를 두번 맞이하는 기분이라 좋은 것 같습니다. 1월1일 새해가 되면서 결심했던 것들을 한달 정도 해본 다음에 설을 맞아 다시 점검해보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심기일전할 수 있는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지는 느낌입니다. 글쓰기를 새해 목표로 세운 분들도 많을 텐데요, 아마 생각대로 잘 안돼서 계획 수정에 들어가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짧은 글 쓰기의 원칙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자신에게 맞는 지속가능한 방법들로 조정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마침표에서 멈추는 독자의 시선
먼저, 짧은 글 쓰기의 원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짧고 쉽게!’입니다. 하나의 긴 문장보다 여러개의 짧은 문장이 더 잘 읽힙니다. 짧은 문장이 긴 문장보다 읽기 쉬운 이유는 문장이 길수록 그 안에 담기는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접한 시선추적 연구에 의하면, 읽는 사람의 눈이 문장 끝의 마침표에 도달하면 시선이 잠시 멈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한 후에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빠르고 쉽게 전해지려면 한 문장의 길이를 가능한 한 짧게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적당한 길이는 한 호흡에 읽을 수 있는 정도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식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단어 선택이 중요한데, ‘짧게’에만 집중하다 보면 ‘쉽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음절이 적은 단어와 친숙한 단어가 더 ‘쉽고 빠르게 읽힙니다’. 짧은 단어가 긴 단어보다, 더 일반적인 단어가 흔치 않은 단어보다 ‘가독성이 높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낯선 단어를 접할 때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가독성이 높다’와 ‘쉽고 빠르게 읽힌다’를 비교해볼까요? 더 짧은 건 ‘가독성이 높다’이지만 더 쉬운 건 ‘쉽고 빠르게 읽힌다’겠죠. 그런데, ‘가독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여러 말 구구절절 필요 없이 더 확 와닿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차이들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적확(的確)한’ 단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단어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어떤 개념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혹은 전문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모든 문장을 그런 단어들로 쓰는 것보다 꼭 필요한 부분에 한번만 사용하는 게 오히려 더 강조되고 집중될 수 있습니다.

어떤 단어와 표현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건 물론 글쓴이의 몫입니다. 내 글을 읽는 주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는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용한 단어가 꼭 필요한지, 그 표현이 적합한지를 판단할 때, 이 글의 핵심을 전달하는 데 그 단어로 인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지, 읽는 사람이 그 단어나 어휘를 읽고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추가로 전달하는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네에게 짧은 편지를 쓸 시간이 없어 긴 편지를 보낸다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짧고 쉬운 문장으로 글을 쓰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쓴이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일수록 읽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은 줄어듭니다. 시간을 들여 말을 정리하고 읽기 쉽게 바꾸면서 더 이상 뺄 말이 없을 정도로 압축해나가다 보면 더 적은 단어로 더 많이 전달할 수 있는 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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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얕지 않고, 쉽지만 가볍지 않게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보며 정리할 때 제일 처음에 체크해야 하는 게 구성입니다. 구성에 따라 글 전체에 대한 느낌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큰 그림을 먼저 보고 관심과 흥미가 생기면 더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구성이 무너지면 글쓴이가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단어나 문장은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읽고 싶게 만드는, 읽고 나서 깔끔하게 잘 썼다고 느끼는 구성이 ‘기-승-전-결’의 룰을 살린 구성이었죠. ‘기-승-전-결’ 각각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과 분량을 지키는 것 말고도 문장을 어떻게 배치할지, 단어를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도 구성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단별로, 문장별로 따로 떼어 재배치해보면서 같은 내용끼리 묶다 보면 겹치고 반복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정리해가면서 글과 문장, 단어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생각을 단어로 바꿔가다 보면 그 생각이 더 명확해지고 그렇게 명확해진 생각을 글로 구체적으로 적다 보면 목표도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량이 긴 글을 쓸 때 스스로 길을 잃지 않고 초점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내용만 담아야 하듯이 하나의 제목을 단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 게 좋습니다. 여러개의 메시지가 있다면 각각 그 메시지를 하나씩 담은 여러개의 글을 써보세요. 그렇게 되면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살릴지 결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최근에 읽은 책(‘스마트 브레비티’) 구절 중에 “모든 단어와 문장을 중요하게 만들라”는 표현이 참 와닿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쓴 글에 자신감과 확신이 없을 때 글이 장황하게 길어지고, 어렵고 모호한 단어들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뿌옇고 어지러운 문장 속에 숨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더 쉽게 쓸 수 있을까?’ ‘더 간단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 ‘이 문장이 반드시 필요한가?’ ‘그냥 들어간 낱말은 없나?’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다듬다 보면 짧지만 얕지 않고, 읽기 쉽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글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들 사이에서 훌륭한 문장가로 존경받는 줄리언 반스는 사용하는 단어가 그 상황에 아주 적절하고 정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이유를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편찬한 경험에서 찾기도 하는데요, 누구보다 단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단어 선택이 탁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좋은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서 사전과 친해지는 것과 함께, 어떤 책을 읽든 그 작가가 사용한 단어들, 그리고 그 단어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문장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보는 것도 권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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